
‘월요병’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다. 고백하건대 아주 오랜 기간동안 ‘월요병’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월요병’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기 뿐이었다. 즉,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해야하는 기간 동안에만 느꼈던 부담감이다.
30대 초반, 사업에 뛰어들며 주중 주말 없이 일했다. 물론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새벽부터 오전시간은 ‘일’을 했다. 그런데, 이 ‘일’이라는 것이 ‘내가 좋아서’, ‘해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때문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월요병’이라는 것 자체가 그 만큼 주말에 ‘일하지 않는’, ‘편안한’ 시간이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 자의적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음껏 보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시간을 앞두게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해보면 결국 ‘월요병’이라는 심리적 부담의 해결책은
매일 매일 자의적으로 일하는 활동들 위주로 시간을 채우거나, 주중 주말 구분을 두지 않고 그냥 일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 여기서 전자의 경우가 많은 청춘들이 이야기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심리적 만족도는 높을 수 있으나,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만족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넉넉히 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백하자면, ‘아예 없다’, ‘없다’로 적었다가,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거의 없다’고 수정했다.)
결국, ‘월요병’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주중, 주말 구분을 따로 두지 않고 일정 부분 일을 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혹시 주변에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질문해보라. ‘월요병’을 겪는지.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월요일을 기다렸다고 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나 역시 그렇다.)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이라면, 주말을 온전히 아이 돌보는데 사용했을 것이고 직장에서 겪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못지 않은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나마 직장생활에서는 중간 중간에 짬을 내서 휴식을 하거나, 어느 정도는 눈치껏 일의 속도를 조절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육아의 경우 칼자루는 아이가 쥐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엄마 아빠들이 월요일을 기다리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월요병’이라는 심리적 부담감의 해결책은 ‘업무에 있어서의 항상성 유지’에 있다. 즉, 주중이든 주말이든 일정 정도 이상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때 일이라고 해서 꼭 ‘회사 일’일 필요는 없다. 각종 부업이 될 수 도 있고, 자격증 준비나 전공관련 공부가 될 수 도 있다. 앞서 말한 ‘육아’를 할 수 도 있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말초적’, ‘근원적’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말 시간을 보내다보면, ‘월요일’을 느끼는 경우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이 ‘항상성 유지’를 먹는 것, 자는 것 까지 확대적용 하는 것을 권한다. 소화기관에 부담을 줄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 과식은 가급적이면 멀리하자. (정말 먹고 싶다면 토요일 저녁 정도에만 허용) 잠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이라고 부족한 잠을 채운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잠이라는게 딱히 ‘보충’에 의미가 없다. 경험해봐서 알지 않나? 더 많이 잔다고 더 좋은 컨디션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잠을 줄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면시간에 주중, 주말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어쩌겠나, 이게 싫다면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근데, 그렇게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삶의 항상성 유지’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정리. 월요병 치료의 핵심! 삶의 항상성 유지
단, 예외가 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한 ‘월요병’은 업무 자체에 대한 부담감을 원인으로 하는 경우에 국한되며,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월요병’을 겪는 상황과는 다르다. 사람이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이 떠나거나, 내가 떠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