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 세대에 대물림 되는 이유에 대한 연구는 교육사회학 분야의 오랜 연구 주제였다. 많은 연구자들은 사는 지역, 학교의 교육시설, 교육 커리큘럼 등 다양한 변수들을 조정하며 가난의 세습과 그 고리를 끊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왔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물리적인 환경조건보다 학습자를 둘러싼 인적조건(가족,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훨씬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즉, 가난이 대물림 되는 이유는 부모세대에게서 종자돈을 물려받지 못함도 아니고, 교육시설이 낙후된 지역에서 자라서도 아니며, 금융지식과 같은 특별한 교육내용을 전달받지 못해서도 아니다.’아비투스’, ‘문화자본’ 등으로 표현되는 ‘문화적 상징, 특성’등을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지식’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가난한게 아니라, 가난한 부모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동일하게 따라하기 때문에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단어로 이러한 계급적 행동양식을 표현했는데, 나는 교직생활을 통해 이러한 경향성을 수 차례 목격했다. 오랜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꼭 등장한다. 이와 대척점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버릇없고 무례하고 사고뭉치 빌런이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래된 시나리오’에만 등장하는 인물구도다.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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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부산에서 제법 학구열이 있는 편인 지역교육청 소속 사립중학교에서 근무했었다. 이 지역의 특징은 같은 학구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큰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가정환경-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부모의 빈부격차가 큰 – 에서 자란 학생들을 많이 접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기대했던 ‘가난하지만 바르게 크는 아이’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착하고, 주변 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반장이고, 운동도 잘하고, 선생님한테도 예의바른 학생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윤택한 집의 아이들이었다. 반대로 학교폭력문제에 단골로 등장하고, 지각과 결석을 많이하고, 반항적이고, 불성실하고 예의없고, 공부도 최하위권인 학생들은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때문에, 이런 학생들의 가정방문을 하게 되는 날이면 꼭 ‘라면 한 박스’를 사서 방문해야 했다.(믿기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2010년대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5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이 패턴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독특한 패턴들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패턴들이 이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는 듯 하다. 부끄럽지만, 몇몇 부분은 나 역시 우리 부모님-정확히는 어머니-에게서 체화된 행동과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의식적으로 고치며 가난의 고리를 끊는 과정에 있음을 밝힌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되는 점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패턴 대신에 내가 돈을 벌고, 모으며 익힌 ‘아비투스’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잊을까 싶기도 하고, 은연중에 이런 패턴을 물려주는 사람이 있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가난을 대물림하는 집안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패턴들을 정리해보겠다. 읽는 중 ‘뜨끔’한 기분이 든다면, 기분 나쁘다고 생각만 하지말고 고쳐라.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하라.


1. 돈 버는 공부를 안한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다만, 이들이 하는 노력과 공부는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일단, ‘열심히 산다 그렇지 않다’의 문제에 앞서 이들은 ‘돈 버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다. 막연한 본인의 희망을 ‘예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돈을 쓴다. ‘투자’가 아니다. ‘돈을 쓰는 것이다.’ ‘돈 버는 공부’와 무관하게 내 자본을 넣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아니, ‘도박’에 더 가깝다.  부디 그냥 ‘열심히’만 살지말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그 방법을 공부해라.


2. 워라벨, 저녁이 있는 삶을 지나치게 따진다.

주5일 근무제도를 정착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헨리포드 다. 맞다. 그 미국차 ‘포드’의 창업자이자 켄베이어 벨트를 산업계 전반에 퍼뜨린 인물.  이상하지 않은가? 하루라도 공장을 더 운영해서 차량을 더 생산하는데 관심 있었을 것 같은 인물이 ‘주5일’을 보급하기 위해 힘썼다는 게. 헨리포드가 주5일 근무제도를 장려한 이유는 ‘근로자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쉬는 날이 늘어나면 그 만큼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차량 뿐만 아나리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산업분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 ‘돈’을 쓰는가. 쉬는 날이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워라벨’, ‘주4일제’,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만큼 자발적으로 소비의 규모를 키울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꼭 무엇인가를 판매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남들 놀 때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반길 일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좀 더 거시적인 입장에서 시간을 바라봤을 때 추구해야 한다. 매일 매일, 매주, 매달 워라벨을 따지는 것은 스스로의 생산성과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조용히 돈 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휴일의 개념없이 일하고, 평일을 포함해서 몰아서 쉴 때도 있다. 아빠를 통해 우리 아이들도 이런 패턴을 배웠으면 좋겠다.


3. 배울점보다는 험담할거리를 먼저 찾는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봉건주의, 유교사상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마땅히 장려되어야 할 일임에도, ‘돈 밝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나보다 부유한(특히 나이는 어리지만 많은 부를 쌓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험담할거리부터 찾는다. ‘저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벌었나?’, ‘저 사람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이런 것은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분위기의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내 수중에 돈이 많아지면 누군가에게 비판,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적 사고방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사고방식’만’ 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지 못하는거다. 타인의 성과까지 부정하고 깎아내리니까. 사실은 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닐지.


4. 자녀가 잘 자란 것이 자신의 ‘희생’ 덕분이라고 믿고, 이를 세뇌시킨다.

자녀가 잘 자란 것에는 정말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물론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그런 요소들 중 하나일테고, ‘부모의 남모를 희생’ 역시 그런 요소에 포함된다. 다만, 그것만으로 자녀가 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서도 아웃풋이 다른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과거 1차 베이비붐 세대에서는 가난 속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한 명에게만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켰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의 ‘희생’이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소라고 주장할 수 도 있다. (사실 이 역시 아웃풋이 다른 케이스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80년대생 이후로는 ‘희생’이라고까지 표현할만한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제는 제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표현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지도 말자. 분명, 자녀를 양육하게 되면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경험과 추억들도 있다. ‘희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가난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초기에 종자돈을 마련하는 것과 다양한 투자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놈의 ‘희생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돈을 모을 겨를이 없다. 몇 년 지나면 언제 선물했는지도 가물가물해지는 그 선물을 사고, 집안 대소사에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쓰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녀의 삶도 부모의 삶과 비슷한 궤적을 밟게 된다. 

이제는,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수준 정도면, ‘희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구성원’ 정도로 받아들이자. 모든 가족 구성원은 각자 개인의 행복을 삶의 1순위에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5. ‘너만 잘 살면 된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담을 준다.

이건 우리 어머니께서 장가갈 때쯤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하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이 표현 역시 어디선가 학습된 워딩이라 믿는다.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를 보면 자상한 엄마는 항상 이런 대사를 하지 않던가. “너만 잘 살면 된다. 내가 바라는건 그거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래서 ‘내가’, ‘내가 새롭게 꾸린 내 가족’이 잘사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생활하면 어떤 말을 듣나? 세상 둘도 없는 천하의 몹쓸 불효자라고 소문난다. 예를 들어, 10년 가까이 중고차만 타다가 차량 고장도 잦고, 아이도 커가고 해서 새로 차량을 구매하면, ‘잘 했다’는 말보다는 ‘우리는 이런거 불편한데 고치지도 못하고 사는데,’, ‘그렇게 돈이 있었으면 좀 도와주지’등등의 말을 듣기 십상이다. (사실, 사업소득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개인이 새 차를 사는 것은 반대한다. 어차피 중고가 되는데…감가상각이…) 앞서 얘기한 ‘부모의 희생’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아이들이 아프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주말 통째로 아이의 간호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희생’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그건 책임감도 아니고, 그냥 연약한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과 내 유전자를 받은 생명체에 대한 사랑일 뿐이다 

차라리 ‘너만 잘 살면 된다’는 말을 아이가 성인이 될 때 해주자. 그리고 경제적인 지원을 극도로 줄이는건 어떨까. 학비? 스스로 벌어서 내면 된다. 하다못해 집안일이라도 돕게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알바비를 주는 형태로라도 ‘스스로 벌어서’ 학비를 만들도록 하자. 그게 아이를 경제적으로 더 빨리 독립시키고, 성장시키는 길이다. 학비줄 돈이 있다면 차라리 그걸 모아두었다가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종자돈에 보태주자. 그게 훨씬, 훨씬, 훨씬 승수효과가 크다.


6. 내가 밖에서 뻥튀기 하는건 생각도 안하고, 남의 집 이야기 뻥튀기 된건 그대로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분이 30,40대라면, 한 가지 묻자. 부모님께 한달에 용돈 얼마 정도를 드리나? 경험상 내 주변분들의 경우 월30만원이 가장 많았고, 월100만원 이상은 거의 없었다. 아예 안드리는 사람도 꽤나 되었다. 그런데, 웃긴건 부모님들 사이 오가는 ‘카더라’에서는 모두 용돈을 100만원 이상씩 받으신다는거다. 

웃픈 사연 하나.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친구가 변리사다. 하루는 그 친구가 부모님께 용돈을 얼마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상담을 요청해왔다. 당장 이번달부터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모르겠다는거다. 사실 친구의 고민상담에 놀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머니께 그 친구의 부모봉양에 대한 칭찬을 귀 따갑게 들었기 때문이다. 매달 생활비로 200만원씩 보낸다는 이야기였는데, 항상 말씀 중간중간에 ‘자식 잘 둬서’, ‘돈 잘 벌어서’ 이런 표현들이 있었다. 결혼한 이들은 알 것이다. 항상 지출은 친가와 처가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정도로 해야 별 탈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한 집에 200만원을 지원하면, 상대방 부모님께도 그 정도선을 보내드려야한다는건데,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알고보니 생활비는 커녕 용돈도 지금껏 보내드린 적 없다니. 친구에게는 매달 부담이 안되는 선의 금액을 정하고 그것을 공평하게 1/2해서 양쪽 집에 드리면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이 뻥튀기는 우리 어머니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친구의 어머니가 만든 것일까. 출처가 어디가 되었든, 그것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돈’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거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돈과 관련해서는 ‘내가 본 것’, ‘경험한 것’을 우선적으로 믿는다는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알기 위해 궁금증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카더라’라는 말만 믿고 돈을 대하는 사람은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7. 내가 못하는건 못배운 탓, 가난한 가정환경 탓이라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모든 상황과 조건에 대한 치트키가 된다. 40대, 50대, 심지어는 60대가 되어서도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있는 이유가 ‘내가 못배워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라고 이야기한다. 다니, 절대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월급날이면 평소에 못 샀던 것을 사고, 돈이 없으면 신용카드 할부로 먼저 사고, 금요일은 불타게 보내야 하고, 자존심 때문에 돈 없어도 계산은 내가 해야하고, 숙취나 피곤함을 이유로 주말 오전시간을 다 날려버리고, 신발장에 신발은 넘쳐나고, 체면 지킨다고 경조금 팍팍내고, 책이라고는 1년에 한권도 안보고, 무엇인가 잘할 생각보다는 대충할 생각만 하고, 약속 안 지키고, 거짓말 밥 먹듯이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이 거짓말하는 것도 믿어버리는.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사는거다. 

누군가는 악착같이 모으고, 지출을 최대한 미루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낄 부분은 아끼고, 돈 못써서 자존심 상하는게 아니라 돈 없어서 자존심 상한다는걸 알고, 금,토,일, 공휴일, 연휴를 자기를 계발할 시간으로 쓰고, 남들보다 잠을 줄여가며 사는 사람도 많다. 성인이라면 제발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전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그것 때문에 내가 잘 못 산다고 이야기하지 말자. 원인은 딱 하나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 사는거다.’


8. 본인이 공부하지 않고, ‘카더라’를 더 믿는다.

경매, 법적인 다툼 가리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공부해서 뭔가 하나라도 이해할 생각은 전혀 안한다. 주변에 그 내용을 공부한 사람의 말도 듣지 않는다. 오로지 주변 측근들의 ‘카더라’만 믿는다. 아는 분 중에는 사는 집의 경매가 진행된다는 등기를 받고, 채무자들과 2개월 이내에 모든 채무를 변제한다는 약속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경매에 참가도 해보고, 관련 절차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분께 ‘최소한 10개월 정도는 걸린다’고 조언해드렸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경매신청을 한 곳이 큰 금융사고 거기서 진행하는 경우는 2개월이면 다 끝난다고 지인이 이야기했다는거다. 그 지인이 아는 사람도 그렇게 금방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여기까지 듣고 더 이상 조언하지 않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가끔은 겪어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게 된다는걸 아니까. 그 후로 어떻게 됐냐고? 경매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본 분이라면 알거다. 채무자에게 첫 번째 등기가 가고나서 언제쯤 첫번째 경매가 진행되는지. 이 분의 경우 변제를 약속한 분들 중 한 분이 새롭게 ‘지급’관련 민사소송을 내면서 경매가 붕 떠버렸고, 처음 경매가 진행됨을 인지한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거의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케이스는 다양하지만, 주변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정말 많다. 도대체가 공부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 공부해서 그걸로 돈벌고 전문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나와 관련된 일, 특히 내 돈과 관련된 일이라면 직접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공부해야할 것 아닌가. 주식, 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 회사의 주력상품은 무엇인지, 앞으로 6개월 정도 후에 해당 산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정도는 알고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리딩방에서 본 내용, 출처도 모를 ‘떡상주’에 대한 내용만 믿고 돈을 투자한다. 당신이 뭐라고, 당신에게 그런 고급 정보가 전달되겠는가. 제발 자기객관화 좀 해라. 

카더라, 미신, 민간요법을 우선시하는 당신의 모습, 당신 자녀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게 쌓이면 가난해지는거다.


9. 학교 공부 잘하는걸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학교공부는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냉정히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근심, 걱정의 대부분은 ‘막대한 돈’만 있으면 웬만한건 다 해결된다. ‘자아실현’을 하지마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한 이후에 ‘자아실현’을 하라는거다. 중소기업 사장님들 중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학벌이 아닌 경우도 많다. 반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출신 기초생활수급자도 많다. 비율이나 가능성을 따지자는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잘 사는 방법은 ‘공부’이외에도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다. 그러니 부디, ‘학교공부’를 잘해야한다고 다그치거나, 그거 좀 잘하게 하려고 사교육비 막대하게 쓰지 말자. 

한 때, 사교육계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고백하자면, 10분만 상담해보면 얘가 공부로 돈을 벌 수 있는 아이인지, 전혀 아닌 아이인지 감이 온다. 부모가 공부를 잘 못했던게 한이 돼서, 내 아이 만큼은 공부를 좀 잘했으면 싶다고? 공부를 못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가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믿나? 4촌 이내의 친인척 중에 공부로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이 있나? 학교 공부 이외에도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들 주눅들게 하지 말자.


10. 있는 놈이 더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다닌다.

있는 놈이 더한 분야는 ‘절약’이다. 이건 분명하다. 자꾸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가장 가까운 사례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12개월 쯤 된 조카에게 줄 세배돈, 어느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되나? 뭐 사실 솔직히 이 정도 월령이면 아이에게 돈을 주는게 아니라 아이의 부모에게 ‘소비에 보탤 수 있게’ 돈을 주는게 맞다. 뭐 굳이 꼭 챙겨줘야 한다면, 마트에서 까까 라도 사라고 만원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근데, 우리 어머니 왈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인데 삼촌이 너무 박하게 그러지 마라. 한 5만원 정도 줘라.” 고백하자면, 그때 당시가 사업이 가장 힘든 시기여서 명절을 앞두고 지갑에 현금이 딱 5만원 있었다. 

현재의 상태를 ‘있는 놈으로 가고있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생각하기에 이야기 한다. 부자는 돈의 규모에 상관없이 안써도 될 곳에는 전혀 돈을 쓰지 않는다.  내 경우는 옷이나 신발 등의 구매는 1년에 한 번 정도고, 대부분의 옷들이 10년이 넘은 옷들이다. 세차비 이외에는 차량을 치장하는데도 돈을 전혀 안쓴다.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도 거의 없고, 담배는 아예 안 피운다. 취미? 정말 솔직히 일하는게 재미있다. 돈을 버는 것과 관련없이 그냥 이런 저런(성격이 다른) 일들을 하는게 재미있다. 영상편집의 경우에는 ‘이게 일인가, 취미인가’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러니 당연히 취미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20년 가까이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어서 PT같은 것도 안받는다.(웃기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살 찌는데 돈 쓰고, 그 살 빼는데도 돈을 쓴다.) 야식. 밤10시 이후로 집에서 뭔가를 시켜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하려고해도 졸려서 못한다.

반대로 돈을 쓰는 곳. 책을 사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다 읽지 못하더라도 일단 사놓으면 언젠가는 들춰보게 된다는 것을 안다. 딸 아이와 함께 대형서점에 가는걸 좋아하는데, 이제는  아이도 ‘서점’을 재미있는 공간으로 인식할 정도다. 아이와 주말에 도서관 갔다가 간식 사주는 돈 역시 아끼지 않는다. 직접 책을 찾아보고, 책은 재미있고 달콤하다는 감정을 심어주기 위해. 온오프라인 강의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속았다’싶은 강의라 할지라도, 내 주머니를 열게한 ‘마케팅 방식’이라도 배울 수 있다. 컴퓨터 등 생산성 도구에 드는 비용. 노트북이 200만원이어도 산다. 대신, 이걸로 얼마만에 비용을 뽑을 수 있을지는 고려한다. 맥북의 경우 중고로 100만원에 사서, 유튜브 광고 수익만으로 3개월만에 기계 가격을 뽑았다. 그 외, 내가 팔게될 가능성이 있거나, 상품 패키징 등을 참고해야할 경우의 물품구매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 역시 공부고, 언젠가는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 있는 사람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부디 없는 사람들이여. 당신과 가치관이 다르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다를 뿐, ‘있는 사람이 더한 것’은 결코 아님을 알아라. 


11. 돈 버는게 쉬운게 아니라고 세뇌시킨다.

‘하루 종일 땅 파봐라, 10원짜리 하나 나오나’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이런 말 엄청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이 외에도 “돈 버는게 쉬운게 아니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는게 어디 쉬운일 이냐.”등 비슷한 표현도 많이 들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돈이 안나오는 곳은 하루종일 땅을 파도 돈이 안나온다. 근데, 그 머리, 그 재주를 가지고 왜 땅을 파고 있나? 돈이 벌리는 다른 일을 해야지.

돈은 누군가의 어려움,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과정에서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나의 몸값은 나를 원하는 사람의 숫자에 달려있다. 내가 하는 일의 고귀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플레이는 감동과 재미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려고 하는 사람은 수억명에 달한다. 선생님의 가르침, 간호사의 간호 등은 너무나도 고귀한 일이고 보람된 일이지만, 나를 원하는 사람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돈 버는 일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나(나의 제품)를 필요로 하게’하면 된다. 쉽지 않은가? 왜 땅을 파고 있지??


이상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행동, 사고방식 패턴이다. 현재의 상황과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이 글을 보고 기분 나빴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글이 그 목적에 맞게 쓰여진 것일테니. 부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돈 걱정’, 가난’이 이전 세대까지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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